버추얼 레지던시 03 김아해

버추얼 레지던시 03

김아해

울산

2023년 5-8월 입주

p 118.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허상이 아니다. 이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다. 그러나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가 현재주의의 시간 구조는 아니다. 사건들의 시간적 관계는 우리가 예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적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 변화와 사건은 허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하나의 세계적인 질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31 p. 장field들은 소립자와 광자, 중력 양자(혹은 ‘공간 양자’)와 같은 입자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입자들은 공간 속에 담겨져 있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공간을 형성한다. 세상의 공간성은 입자들 간에 성립하는 상호 작용들의 네트워크에 다름없다.
입자들은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그리한 상호 작용에 의거해서만 입자들은 진실로 존재한다. 이 상호 작용이 세상의 사건이고, 방향도 없고 선형적이지도 않은 시간의 최소 기본 형태다.

p 184. 우리의 자아를 세우는 세 번째 요소는 기억이다. (…)우리는 연속된 순간들 속의 독립된 프로세스들의 집합이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과거와(바로 직전의 과거부터 아주 먼 예전까지) 단단히 엮인다. 우리의 현재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떼 지어 있다. (…) 내게는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의 흔적들로 가득 찬 내 생각들과,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과,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온화한 다정함과, 청소년기의 여행들이 들어있다. 나의 뇌 속에는 이제까지 읽은 책들이 층층이 쌓여 있으며, 사랑과 절망, 우정, 그동안 내가 쓴 글과 들은 이야기들,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었던 얼굴들이 담겨있다.

p 205. 베르그손이 사용하는 ‘기억’이라는 용어에 대해 설명해두자. 우선 기억이라는 우리말은 프랑스어에서 두 가지 단어로 표현된다. 하나는 ‘수브니르’ (souvenir)로서 특정한 기억(부분기억)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메무아르’ (memoire)로서 기억 일반(전체기억)을 의미한다. 메무아르가 기억작용(acte de mémoire)이라는 동사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지각이미지들을 조직화하고 저장하는 작용과 보존된 특정기억들을 상기하는 작용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p 204. 우리는 우선 과거 일반 속에, 그리고 나서 과거의 어떤 지역에 다시 위치하기 위해 현재로부터 벗어나는 고유한(sui generis) 행위를 의식하고 있다. 이것은 사진기의 초점맞추기와 유사한 모색의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 기억(souvenir)은 아직도 잠재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적절한 태도를 채택함으로써 기억을 받아들일 준비를 막 갖추게 된다. 그것은 구름처럼 나타나 차츰 응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것은 잠재적 상태로부터 현실적 상태로 이행한다.

p 386. 사진을 직접 이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런 주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상미술이 주종을 이루는 시대에 있어서, 미술 작품의 진실성을 따질 때 그것은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사진이 무한한 시각 세계를 열어보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 렌즈의 성격은 무차별적이다.

p 387. 이제 사진은 그 자체로서든 미술과 결합된 것이든, 미술의 영원한 근본이 되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재생산해 내는 기계와도 같은 성격 때문에 그것의 이미지는 곧 신선함의 신비로움을 잃게 되었으며 점차로 평번한 것이 되어갔다. 그것은 어떤 분명한 것을 혐오하게 하는 감정까지 유발시켰다. (…) 특별한 것에 대한 욕구가 자극과 싫증의 순환논리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된 것이다.

p 379. 전혀 그 출발이 다른 이미지들이 약간의 회화적인 테크닉과 그래픽적인 터치들과 함께 결합되거나, 여기저기 흩어진 채로 혹은, 서로 겹쳐진 상태초 ‘일상의 이미지’를 창출해 내고 있다. 그 이미지들은 다른 것들로 옮겨지는 중간 상태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것들은 마치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는 무수한 이미지들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출현하면서 우리의 감각을 어느 정도는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p 386. 사진을 직접 이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런 주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상미술이 주종을 이루는 시대에 있어서, 미술 작품의 진실성을 따질 때 그것은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사진이 무한한 시각 세계를 열어보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 렌즈의 성격은 무차별적이다.

p 387. 이제 사진은 그 자체로서든 미술과 결합된 것이든, 미술의 영원한 근본이 되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재생산해 내는 기계와도 같은 성격 때문에 그것의 이미지는 곧 신선함의 신비로움을 잃게 되었으며 점차로 평번한 것이 되어갔다. 그것은 어떤 분명한 것을 혐오하게 하는 감정까지 유발시켰다. (…) 특별한 것에 대한 욕구가 자극과 싫증의 순환논리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된 것이다.

p 379. 전혀 그 출발이 다른 이미지들이 약간의 회화적인 테크닉과 그래픽적인 터치들과 함께 결합되거나, 여기저기 흩어진 채로 혹은, 서로 겹쳐진 상태초 ‘일상의 이미지’를 창출해 내고 있다. 그 이미지들은 다른 것들로 옮겨지는 중간 상태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것들은 마치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는 무수한 이미지들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출현하면서 우리의 감각을 어느 정도는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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