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비짓 06 대전

스튜디오 비짓

06

대전

가상현실 속 인지와 결함

김보원

가상현실 속
인지와 결함

이번 스튜디오 비짓은 울산의 예술단체 엠엠(MM: Mixed Media)과 함께, 2025 문화도시 울산 조성사업 울산청년플레이리스트 〈U-Spectrum〉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25년 스튜디오 비짓의 주인공인 김보원(대전), 문채원(전주) 두 작가의 작품을 울산의 Sywisy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학업을 위해 연고 없는 대전으로 넘어온 김보원 작가는, 이곳에서의 삶을 차츰 사랑하게 되었다. 학교와 집, 작업실이라는 단순한 동선을 이동할 때는 오토바이를 애용한다고 하는데, 헬멧을 들고 나타난 그날은 올블랙 드레스 코드로 여전사 같은 인상을 남겼다. 카이스트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쓰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곧 떠날 예정인 그를, 마지막 순간의 작업실에서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김소진: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김보원:
안녕하세요, 작가이자 인지심리 연구자인 김보원입니다.인간이 가상현실 세계에 놓였을 때, 가상 공간이나 가상의 신체를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정교하게 구축된 세계 안에서 아주 작은 결함이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결함이 어떻게 인지되는지를 관찰합니다.

Papers, 2024, 복사용지위에 색연필

김소진:
여성 미디어아티스트들이 모여있는 우먼즈랩탑에 속해 있으시죠? 영상 작업을 몇 번 본적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보원:
우먼즈랩탑은 기술을 예술 작업에 활용하는 여성 예술인들의 모임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3D 프로그램에서부터 파이썬이나 웹코딩, 아두이노나 터치디자인까지 랩탑을 매개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포괄합니다. 이곳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하고 zine을 발간하기도 하면서 마음 맞는 여성 작가 동료들과 재미있게 여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업 과정은 특정 주제와 관련된 단어나 이미지, 문장을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주제와 관련된 단어들을 뽑아 나열하고, 각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확인합니다. 사전적 정의를 확인하면 그 단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예시 문장과 유의어, 반의어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집한 언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장을 만들어보는데, 이때 문장은 한국어나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처럼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도 번역해 보기도 합니다. 문장을 만든 후에는 해당 문장을 어떤 상황과 장면에 사용할 수 있을지 상상하며 짧은 글을 작성하고, 이를 시나리오 삼아 주로 게임 엔진인 유니티(Unity)에서 장면을 구현하고 녹화합니다. 이후 편집과 내레이션 녹음을 거쳐 영상 작업이나 인터랙션이 가능한 미디어 작업으로 발전시킵니다.

Penetrating Gaze, 2025, 단채널 영상, 5분 14초

김소진:
미술학도였던 보원님이 카이스트 척척석사를 이루시고, 박사까지 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이 무엇이며 어떤 연구를 해오고 계신가요?

김보원:
저는 현재 카이스트에서 가상현실 속 인간의 인지심리 양상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에 있습니다.가상 현실 안에서 반복적인 인지 실험을 설계하고 피험자를 모집한 뒤, 특정 조건의 상황을 경험하게 하여 사람들의 반응 속도, 오차율 등의 행동 반응과 심박, 뇌전도, 근전도 등의 신체 반응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며 연구를 수행합니다. 석사 때는 가상현실 안에서의 자기 아바타 인식에 대해 연구했었어요. 실제 세계에서는 만약 단체 사진이나 오래된 졸업 앨범을 보면 수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자신의 얼굴을 누구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데 이런 인지 현상을 ‘Self pop-out’ 혹은 ‘self-advantage’라고 해요. 시끄러운 파티 장소에서 누군가의 대화 속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면 그 순간 내 이름이 정확하게 잘 들리는 ‘Cocktail party effect’와 비슷한 건데요, 이런 현상이 가상현실에서 특정 아바타에 짧게 체화된 경험을 한 이후에 본인 아바타에게 나타나는지 Visual search task 실험 패러다임을 적용해 알아보았어요. 해당 논문은 ISMAR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xed and Augmented Reality)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출판된 버전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저는 오래전부터 디지털 자아 Digital Self에 대해 작업을 해오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학문적 활동은 저의 작업에도 좋은 양분이 되어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안구 데이터를 수집하는 모습

김소진:
SNS를 통해서 외국 학회도 많이 다니신 걸 보았어요. 동시에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진 않을텐데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2024 시애틀 학회 참석 후 연구 발표하는 모습

김보원:
“1년에 최소 한 번은 전시를 꼭 하자!”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전시를 이어가며 작업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고요, 신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요. 그래서 전시 일정이 잡히면 작업에 돌입하는 방식으로 저만의 리듬과 루틴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업에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별 생각없이 그냥 당연스럽게 하는거고.. 재미있게 하는거죠. 그렇지 않으면 오래 계속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사는 일이 바빠지면 작업을 놓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놓지 않고 멈추지 않으며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로의 공동체》(2025, 안양 아트포랩) 전시 설치하는 모습

대전에서의
작가 생활

김소진:
상투적이긴 하지만 스튜디오 비짓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보시기에 대전은 어떤 도시인가요?

김보원:
제가 살고 있는 대전은 저에게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큰 안정감을 주는 곳입니다.삶의 속도가 적당하고 여유가 있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작업도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즐겁게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전 추천 스팟 약도

김소진:
작업실을 마련하게 된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어떤 동료들과 함께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김보원:
작업실은 지금 제가 소속된 대학원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구하게 되었어요. 모두 다양한 배경을 가진, 미술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발을 담그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에요. 오랫동안 공실이었던 한 건물에서 저렴한 공간을 찾아 2년 동안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칵테일 수업을 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도 했죠.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동료들이 졸업하고 대전을 떠날 시기가 다가와, 이 공간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작업할 때 컴퓨터가 놓일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해서, 앞으로 한동안은 작업실 없이 작업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김소진:
각자의 여정을 향해 정리하게 되셨군요. 돌고 돌아 또 만나게 될테니까요. 그럼 평상시 ‘카이스트 – 작업실 – 집’ 이렇게 3박자로 다니셨을 것 같은데 학교에서도 가장 애정이 깃든 곳이 있나요?

김보원:
자주 찾게 되는 특별한 장소는 연구실 뒤편에 마련된 작은 텃밭입니다. 학교 친구들과 함께 주말농장처럼 텃밭을 가꾸는데, 하루 일과 중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이곳에 와서 농작물에 물을 주며 머리를 식히곤 합니다. 직접 키운 열매를 수확할 때 큰 기쁨을 느끼고, 농사일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우게 됩니다.이번 겨울에는 배추와 무 등 김장용 작물들을 심었는데, 너무 늦게 심어서 생각보다 크게 자라지 않아 김장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텃밭으로 걸어오는 길에 우연히 하늘색 꼬리의 예쁜 물까치를 만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집니다.

김소진:
학업을 위해 옮겨온 도시가 아주 마음에 드시나보군요. 박사과정 이후에도 대전에 계실 예정인가요?

김보원:
아직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그 이후의 거처가 확실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대전은 분명 계속 살고 싶은 도시입니다. 만약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로 거처를 옮기게 되더라도, 저는 대전처럼 평화롭고 인구 밀도가 비교적 낮고 자연 환경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직접 기른 농작물

김소진:
제가 알기론 보원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미식가 아니던가요? 학교 근처 맛집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김보원:
칼국수나 빵 같은 대전 음식도 맛있지만, 타 지역에서 친구가 놀러오면 항상 ‘노마드테이블’로 데려갑니다.
사장님이 노마드처럼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맛보고 배운 요리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에요.
재미있는 점은 매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달라진다는 것인데요.
메뉴판에 있는 음식도 정말 맛있지만, 그때그때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정성스럽게 만든, 메뉴판에 없는 깜짝 요리들이 더 기대되는 곳입니다.

노마드 테이블의 히든 메뉴, 가자미 솔 뫼니에르 Sole meunière

김소진: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벗기위해 대전의 관광명소도 알려주세요. 참, 성심당은 따로 언급 안해주셔도 됩니다.

김보원:
대전은 더 이상 ‘노잼 도시’가 아니에요!
실제로 여행객 증가율이 전국 1위이기도 합니다.
‘빵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성심당뿐만 아니라 훌륭한 빵집이 많아 택시를 한 대 빌려 대전 곳곳의 빵집 투어를 할 수도 있는데 요즘은 시에서 자체적으로 투어 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네요.. 또한, 가을이면 국제 와인 엑스포도 열리고 진짜 괴랄한 미감의 조형물들이 설치되는 유성국화축제도 있어요. 이 조형물들은 해마다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가 가을이 시작되면 다시 나오는데 제발 보러와주세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나만 알수는 없어…

여름마다 밤 늦게까지 대전 곳곳에서 열려서 마치 파리의 Nuit Blanche를 생각나게 하는 0시 축제재즈 페스티벌도 근사하답니다. 대전에 많이 놀러 오세요. 재미가 정말 많아요!!!

✦ 대전 빵시투어
「빵시투어」는 대전의 5개구에 있는 빵집 명소를 방문하는 빵 전문 시티투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 대전역 동광장에서 출발해 A코스, B코스, C코스를 선택해서 돌아 6시에 도착한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를 참고하세요.

✦ 대전국제와인엑스포
「대전국제와인엑스포」는 대전관광공사가 주최·주관하는 와인과 문화가 함께하는 국제적 수준의 명품축제이자 대한민국 대표 와인축제이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를 참고하세요.

✦ 대전 0시 축제
「대전 0시 축제」는 추억의 대중가요 ‘대전 부르스’를 모티브로, 대전의 재미를 지속한다는 의미의 ‘잠들지 않는 대전 꺼지지 않는 재미’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축제이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를 참고하세요.

✦ 재즈 페스티벌
「대전 재즈 페스티벌」은 주로 유성구 유림공원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로, 재즈 공연과 수제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이다. ‘유성 재즈&맥주 페스타’라고도 불리며, 국내 최정상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과 전국 각지의 수제 맥주, 푸드 트럭 등을 즐길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를 참고하세요.

가을이면 볼 수 있는 유성국화축제의 멋진 조형물

김소진:
U-Spectrum의 초대로 전시를 위해 울산으로 향하실 텐데 가고 싶은 관광명소가 있으신가요? 먹고 싶은 울산 음식이랄지.

김보원:
바다를 좋아해서, 몽돌 해변에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음식은… 꼼장어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울산 시장에서 꼭 먹어보고 싶고, 멧돼지 요리도 있는 것 같아서 궁금하네요.

대전에서
작업하기

김소진:
대전 예술계의 특이사항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김보원:
대전은 카이스트를 비롯한 주요 과학기술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어,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입니다.
예를 들어, 대전문화재단에서 연례 행사처럼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아티언스(Artience)’라는 공모 프로그램이 있습니다.이 프로그램은 예술가와 연구자를 매칭해 공동 작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로 선보입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예술이 실험적이고 확장적으로 접근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김소진:
대전 미술씬에 아쉬운 점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김보원:
대전의 아쉬운 점은 운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독립 예술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지역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자유롭게 선보일 기회가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다양한 전시 공간과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이 늘어난다면, 지역 예술 생태계가 훨씬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소진:
대전에서 작업을 고민하고 있는 동료들을 위해 공모사업과 같은 정보를 알려주세요!

김보원:
대표적으로대전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아티언스 대전(ARTIENCE = ART+SCIENCE) 공모 지원사업이 있습니다.
이 사업은 대전의 풍부한 과학기술 자원을 기반으로 연구자와 예술가를 팀으로 매칭해 함께 하나의 작업을 만들어나가는 융복합 창작활동을 지원합니다. 매년 진행되며, 결과 보고전도 항상 있으니 대전에 오신다면 한 번쯤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대전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테미예술창작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매년 시각예술 전 분야에서 약 6명의 작가를 모집하며, 개인 작업실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공간 자체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오픈 스튜디오가 열리면 꼭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 아티언스 대전
「아티언스 대전」은 대전문화재단에서 2011년부터 진행해온 융복합 예술 사업으로,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하고, 그 결과를 선보이는 행사다.

✦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는 대전 원도심에 위치한 시각예술 레지던시로, 입주예술가들이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창의적인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소진:
최근에 경기도 안양에서도 전시하셨었잖아요.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전시를 준비할 때, 작업 외적으로 특별히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나 배움이 있을까요?

아트포랩 《회로의 공동체》 전시 전경
사진 및 제공 © 스튜디오 플피

김보원:
안양도 전시 이전에는 방문해본 적이 없는 지역이었는데요, 전시를 통해 가보지 못했던 곳을 방문하게 되면, 전시 준비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져 기분이 설레고 즐거워요.
특히 지역마다 분위기나 활성화된 상권의 종류가 다르다 보니, 다양한 환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안양에 있는 아트포랩은 아주 유명한 평촌 학원가에 위치해 있어 갈 때마다 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곤 했네요.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도 싹이 트듯, 척박한 환경임에도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아름다운 공간을 운영하시는 모든 공간 운영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소진:
11월에 울산에서 전시를 하시잖아요. 재밌는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OOOO만 갖춰져 있다면 작업의 베이스를 울산으로 옮기겠다.” 이 문장의 빈칸을 채워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최근 광주에서 예술촌을 형성하면서, 타 지역 작가님들이 제2의 작업적 기반으로 광주를 선택하도록 만들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꽤 고민이 많거든요.

김보원:
현재와 같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할 만큼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면 어디서든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아니군요. 동료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지도 중요한 것 같네요.
짧게 말하자면, “삶을 꾸릴 수 있는 환경만 갖춰져 있다면 작업의 베이스를 울산으로 옮기겠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소진:
타지역 예술가로서 바라본 울산의 문화예술 환경(혹은 아트씬)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혹은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부분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으신가요?

김보원:
저에게 울산은 늘 산업과 바다의 풍경이 강하게 떠오르는 도시였는데요, 최근에는 흥미로운 전시 공간들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울산시가 문화예술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히 저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울산이 가진 고유한 배경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지 느끼고 싶습니다.
특히 울산의 산업적 풍경과 바다, 강이 가진 힘이 다른 도시에서의 예술과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하고 싶네요!

김소진:
새로운 영상 작품과 〈Papers〉 시리즈도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업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작업 내용 직접 듣고 싶습니다.

Sywisy에서 설치를 기다리고 있는 〈Papers〉시리즈의 새로운 드로잉들

김보원:
연구하면서 아무래도 논문들을 많이 읽게 되는데, 이때 학술 논문의 도표, 연구 결과, 과정을 시각화한 피규어들을 따로 수집합니다. 이러한 자료들이 왜 제 시선을 사로잡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미술을 위해 제작되지 않은 다른 목적의 이미지들이 시각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수집한 이미지들은 논문의 형태로 재편집하고, 색연필로 복사 용지 위에 손으로 그려내는 드로잉 작업으로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Papers〉 시리즈는 얼핏 보면 실제 출판된 연구 논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손으로 그려져 있어 읽거나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인간 대상 연구를 진행할 때, 아무리 실험 조건을 통제해도 변수와 개인 차이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논문 작성에서 중요한 연구의 재현 가능성(reproducibility)이 항상 지켜지기 어려운데, 저는 이러한 어려움을 작업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김소진:
마지막으로 지역에서의 활동을 고민하는 동료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보원: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이벤트, 너무 많은 일과 너무 많은 의견들에 지치신 분이 계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전으로 잠깐 내려오라고 권하고 싶어요.

천천히 흘러가는 갑천 위에
동동 떠 있는 나뭇잎처럼,
대전에서 지내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