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지
Youngji Park
세종
작가
박영지는 자연에서 비롯된 감각과 기억,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감각은 단순한 관찰이 아닌, 몸으로 체험되고 반응하며 기억되는 복합적인 경험이며, 작업은 그 감각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물성과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동양화와 도자의 재료적 특성을 기반으로, 색이 번지고 겹쳐지며 재료가 스스로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과 감정, 장소에 남은 시간의 흔적을 작업으로 옮긴다. 작업은 완성보다 형성의 과정과 물성의 반응에 초점을 두며, 회화와 도예, 평면과 입체, 예술성과 기능성의 경계에서 감각이 어떻게 ‘기록되고 남을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세라믹 회화
공감각 기억 식물 자전적경험 장소

1991년생

학력


2020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2016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도예유리과 졸업

개인전


2023 못을 박지 마시오.,  전시공간 샘, 조치원

주요 단체전


2018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SEMA창고, 서울
2016 용도변경전, 서교동공영주차장, 서울
2016 이사 전 전시합니다, 상수동143- 38, 서울

수상 및 선정


2025 새종시문화관광재단 청년미술 창작지원사업 선정
2023 세종시문화관광재단 생애최초 창작지원사업 선정
2018 서울시립미술관 공간지원프로그램 공간지원 선정

 


저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박영지입니다.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꾸준히 애정을 쏟고, 그 가치가 언젠가 빛을 발할 거라고 생각하며 과정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빠르기보다는, 묵묵히 오래 작업하는 편입니다.

오랜기간 동양화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며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종이 위에 채색하는 일은 지금도 늘 어렵지만, 그 위에 드러나는 깊고 섬세한 색감은 저에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입니다. 종이를 반수하고, 분채를 아교에 개어 물감을 만들고, 색을 올리고 말리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서로 다른 색들이 층을 이루며 예상치 못한 색이 탄생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색이 천천히 축적되고 드러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제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됩니다.

제 작업은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억하기 위해, 또는 기억되기 위해 무언가를 남기며 살아갑니다. 저는 그 방법을 ‘공간을 그리는 일’로 풀어왔고, 제가 경험한 장소와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해왔습니다.

2019년 필리핀에서의 기억을 담은 작업을 전시할 기회를 얻습니다. 어린 시절에 지내던 필리핀집은 자연과 가까운 곳이었고, 새소리,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빛 같은 감각들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의 자연이 제게 준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도시의 삶 속에서도 저는 자연 풍경을 그리며 그 기억을 붙들고자 했습니다.

2020년부터 2년간은 미국에서 지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분위기 속에서 불안한 시간을 보냈지만, 오히려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변화하는 자연의 색과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생명력’이라는 말이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연한 새싹, 하늘로 뻗는 줄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불규칙한 움직임 같은 것들이 저에게 큰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생명력을 실내 공간에도 담고 싶었습니다. 그림을 벽에 걸기 위해 못을 박으려 했지만, 집 주인으로부터 “못을 박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로잉을 테이프로 벽면에 가득 붙였고, 그렇게 안방은 그림으로 채워지며 활기를 얻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2023년 전시 <못을 박지 마시오>로 이어졌습니다. 전시장 역시 보존이 필요한 공간이라 못을 박을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제약이 새로운 방식의 설치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작업이 어떻게 공간을 채우고 감각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최근에는 도자와 회화의 경계에서 색과 재료의 반응을 탐구하는 전시를 기획했고, 2025년 10월에 전시가 예정되어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관찰한 녹색이 유약, 온도, 불, 시간 같은 물리적 요소와 만나며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실험하고, 그 결과뿐 아니라 변화의 과정 자체를 작업으로 삼고자 합니다. 특히 유약이 스며들고 번지는 시간의 층위를 시각화하며, 회화적 감각과 도자기의 물성이 만나는 접점을 구성해보려 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완성된 형태보다는 색이 생성되고 축적되는 흐름을 중시하며, 과정이 감각을 어떻게 기록하고 남기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즘 저는 무언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느낄 시간 없이 지나가버리는 세상의 속도에 종종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 삶과 작업만큼은 조금 느리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속도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그 속도를 느리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제 작업을 위한 가장 정확한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